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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즐거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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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중학교에 입학했다.
동아리 하나는 꼭 들어야 하는 학칙 때문에 친구 따라 관현악반에 들어갔다.
악기는 다룰 줄도 모르고 클래식의 클 자도 몰랐지만 그냥 따라 들어갔다.
신입단원을 환영한다며 선배 단원들이 연주를 해줬다.
'피가로의 결혼 서곡'을 연주해주었고 첫마디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심장이 마구 두근댔고 온 몸이 뜨거워졌다. 이날 이후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바이올린을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무작정 오케스트라를 시작했고 나도 피가로의 결혼 서곡 악보를 받게 되었다.
악기 잡는 방법, 활 잡는 방법은 친구 어깨너머로 터득했다. 속된 말로 '야매'였다.
첫 합주를 하는데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친구는 바이올린을 매우 잘해서 제1바이올린을 맡았고, 나는 제2바이올린 맨 끝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어깨너머로 배우며 연습을 한 지 반년이 지났고, 생에 첫 연주회를 했다.
연주회가 끝나고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나를 향한 박수가 아닌 것 같았다.
한 게 없었다. 연주회 내내 내 소리가 안 들리기를 바랐다. 더 잘하고 싶었다. 전혀 즐겁지 않았다.
친구들은 현악중주를 꾸렸다. 너무 부러웠다.
클래식을 들을때면 두근대던 마음은 사라지고 언제부턴가 스트레스받으면서 합주를 하고 있었다. 합주 날만 되면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앞서는데 손가락이 따라주지 않았다.
갑자기 악기를 잘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앞서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냥 즐겼다.
앞서는 마음을 잡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냥 즐기자고 생각한 순간부터 다시 조금씩 악기는 재미있어졌다.
합주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은 그냥 오케스트라에 내 소리를 묻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부분은 내 솔로 부분인 양 최선을 다했다.
부끄럽지 않았다. 이 정도면 잘한 거라며 스스로 칭찬했다.
그렇게 슬슬 오케스트라는 다시 재미있어졌다.

중학교 관현악단

2015년 3월. 대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이루지 못했던 제1바이올린의 꿈을 이루고자 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 HIAMO에 들어갔다.
동아리에 들어와서 레슨도 조금씩 받으며 제대로 된 연습을 시작했다.
미친 듯이 연습만 했다. 동아리방은 내 거실이었고, 연습실은 내 안방이었다.
연습을 해도 실력은 늘지 않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고통스러웠고 음정이 맞지 않을 때면 신경질이 났다.
하지만 아무리 신경질이 나더라도 즐기려는 마음은 잃지 않았다. 정 안되면 그냥 다음 부분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지금까지 약 40개의 무대에 올랐고, 전국아마추어오케스트라연합 AOU에서 악장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는 평생 놓지 못할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대학생활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만약 중학교 때 앞서가던 마음을 잡지 않고 즐기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마음을 놓고 즐깁시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최선을 다하는 당신이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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