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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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진(眞),선(善),미(美)'중 '미'가 3등인 이유(영혼의 3분설-플라톤)
미스코리아 는 진(眞),선(善),미(美)로 나눠진다. 왜, 누가, 이런 순위를 정했을까? 플라톤은 영혼을 이성/지성을 담당하는 머리, 도덕/의지를 담당하는 가슴, 욕구/욕망을 담당하는 위장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머리는 진(眞), 가슴은 선(善), 위장은 미(美)로 말하기 시작하게 된다. 인간의 정신활동의 결과물은 문화로 나타난다. 여기서 이성/지성은 학문, 도덕/의지는 종교를, 욕구/욕망은 예술이라는 문화를 낳게 된다. 학문에 의한 과학혁명이 중세에서 근대과학으로 넘어오는 발판이 되고, 종교개혁을 통해 근대로 접어들며, 르네상스에 의해 예술의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진, 선, 미는 각각 제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플라톤은 이 세 부분이 제자리에서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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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법
우리는 지금까지 쉬는시간을 잘 못 활용했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뽀모도로 공부법'의 기본형은 25분 공부하고 5분 휴식하고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 5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더 나아가 공부하는 도중 쉬는시간은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도 쉬는시간이 되면 휴대전화로 유튜브로 영상을 보거나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며 새로 올라온 친구들의 스토리를 보는 일을 많이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5분의 쉬는시간을 기다리게 되고 심지어 공부하는 도중에 쉬는시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잘못된 쉬는시간 때문에 우리 뇌는 점점 망가져간다. 왜 쉬는시간에 휴대폰을 보는 행동이 이렇게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이것은 바로 우리 뇌의 '보상' 체계와 '휴식' 체계가 겹쳐버렸기 때문이다. 쉬는시간에 휴대폰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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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시공간의 존재 - 뉴턴 vs 라이프니츠
17세기 말, 영국과 독일에서는 누가 먼저 미분을 발견했냐 하는 싸움이 번졌다. 기록에 의하면 뉴턴이 라이프니츠보다 10년 먼저 미적분학을 정립했지만 발표는 라이프니츠가 먼저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뉴턴이 자신이 먼저 발견한 것을 라이프니츠가 베낀 것이라고 말하며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뉴턴은 이후에 영국의 왕립협회 협회장이 되고, 라이프니츠는 독일의 과학 아카데미 원장이 되었으며 이 진흙탕 싸움은 국가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실제로 이 싸움으로 약 100년간 독일과 영국 사이에 학문적 교류가 뜸했다. 이 다툼은 소위 '미분전쟁'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싸웠던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시공간에 대한 개념도 서로 달랐다. 뉴턴의 시공간에 대한 개념은 절대주의이며 물질이 존재하지 않아도 시공간은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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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패러다임의 전환 - 토마스 쿤
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 혁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설명했다.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사용하곤 한다. '아이폰 출시로 인해 휴대폰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라던지 '인터넷 강의의 시작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처럼 말이다. 패러다임이라는 언어를 처음 정의한 것은 미국의 과학자 겸 철학자 토마스 쿤이다. 패러다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과학 법칙들은 기원전 300년 경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의되었으며 약 2000년 가량 유지되었다. 대표적으로 17세기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의해 역학 혁명이 이루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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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악의 평범성 - 한나 아렌트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곳곳에 있는 유대인들을 잡아다 가스실에 넣고 학살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뉘른베르크 법 공표 이후 부모 혹은 조부모 중 유대인이 몇 명 인지를 정리해 표로 나타내서 혈통을 분리하기도 했다. 크게는 독일혈통, 1/2급 유대인, 유대인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유대인 계급은 제국의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1200만명이라는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주도한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가스실에서 살해당했는데 12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대학살을 저지르면서 당연히 일손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 중 유대인이주국 총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그중 600만 명의 살해에 일조했다고 전해진다. 아이히만은 독일의 패전 이후 이스라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