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4세기경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소피스트'라는 집단이 있다.
소크라테스를 재판으로 넘겨 사형시킨 집단으로 유명하며 이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에 의해 기록되며 궤변론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물론 현재에는 소피스트가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소피스트 중 '프로타고라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매우 논리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학문을 전파한 사람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과외교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번 글을 썼을 당시 파르메니데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고 주장한 파르메니데스는 인간의 감각을 절대 믿지 않았다. 진공을 절대적으로 부정했으며 우리가 보는 물체의 이동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후에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각각 찬 물과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두 사람이 동시에 미지근한 물로 손을 옮겨 담는다면 찬 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사람은 미지근한 물이 '뜨겁다'라고 느낄 것이고,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사람은 '차갑다'라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물은 차가운 것일까 뜨거운 것일까?
만약 파르메니데스가 이에 대해 답한다면 둘 다 틀렸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뜨겁다, 차갑다는 인간의 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프로타고라스가 대답한다면 둘 다 맞다고 할 것이다. 찬 물에 담그고 있던 사람에게는 뜨거운 것이며,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던 사람에게는 차가운 것이라고 말한다. 즉, 둘 다 맞는 것이다.
이처럼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의 감각을 믿으며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감각뿐만 아니라 선과 악도 상대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행동이 누군가에겐 선한 행동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악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종교 신자들이 길거리에서 '다 같이 천국에 갑시다!'라고 포교 활동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정말 선한 행동이라고 여겨지지만, 다른 이에게는 불쾌함을 전달하는 악한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의 개념은 인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꼬리가 긴 원숭이를 '긴 꼬리 원숭이'라고 부르지만 아마 그들은 우리를 '말하는 원숭이'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만물을 창조하거나 판단하는 척도는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정확하게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는 없으며 항상 내 위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처럼 나에겐 선한 행동이지만 누군가에겐 악한 행동이 될 수 있으며, 나에겐 옳지만 상대방에겐 옳지 않은 생각일 수 있다.
플라톤에 의해 프로타고라스가 궤변론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지만 위와 같은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한 번쯤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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