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curus의 쾌락주의의 시작은 Democritus의 원자론의 계승이다. 인간은 그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원자들의 이합집산일 뿐이라고 본 Epicurus는 인생을 사는 데에 있어 사명감, 목적, 의미 등은 필요 없다고 보았다. 단지 중요한 것은 바로 행복, 쾌락이었다. 쉽게 말하면 ‘인생은 즐겁고 행복하면 된다’라 생각한 것이다. 이런 사상을 ‘쾌락주의’라고 부른다.
Epicurus는 ‘행복 = 갖고 있는 것/가지고 싶은 것’으로 정의했다. 예를 들어, 갖고 있는 돈이 1만원이고, 가지고 싶은 돈이 10만원이라면 행복은 0.1이 되는 것이다. Epicurus의 말 대로 한다면, 갖고 있는 것이 적다면 가지고 싶은 것을 줄임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Epicurus는 ‘나는 빵과 물만 있다면 신도 부럽지 않다’ 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Epicurus의 말처럼 삶의 목적의식은 뒤로한 채 행복과 쾌락을 위한 생활만 하는 것이 과연 즐거웠을까? Epicurus는 이 경우를 보완하기 위하여 정원공동체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Epicurus는 마을 한 켠에 정원공동체를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모았으며 약 40만명의 사람이 모였다.
여기서 Epicurus의 쾌락주의를 육체적인 쾌락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심하게는 Epicurus가 하루에 18명의 여자와 잤다는 루머도 퍼질 정도이다. 영어 단어 ‘Epicure’을 번역하면 ‘식도락’이라는 뜻인데 이는 Epicurus에서 따온 단어이며, 아직까지 Epicurus의 쾌락주의에 대한 오해가 이어져 왔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육체적 쾌락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쾌락을 중요시한 것이다. Epicurus가 말하는 행복의 의미에서 행복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늘려라’가 아닌 ‘갖고 싶은 것을 줄여라’ 라고 소이 ‘미니멀리즘’을 외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육체적 쾌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쾌락의 과정 속에서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Epicurus는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Epicurus는 ‘살아있을 때에는 죽을 수 없고, 죽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삶의 목적, 의미를 찾으려는 정신적 고통도 없으며, 육체적 고통도 없고, 철학으로 우정을 나누며 심심하지도 않고,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않는, 오직 즐거움과 행복만이 존재하는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했으며 이것을 중시하는 사상이 바로 Epicurus의 쾌락주의 이다.
이런 이유로 결국 Epicurus의 쾌락주의는 원자론의 계승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원자들의 집합 이상의 어떤 것이 아니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은 없으며 육체가 없으면 정신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Epicurus는 인간을 딱 ‘말하는 감자’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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