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생각하는 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에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고, 쉬고 있는 뇌에게 조금 더 분발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이지성 작가님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읽고 내가 하는 생각들은 진정 내가 한 생각이 아닌 조종당하고 개조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수천 년 묵은 지혜의 산삼을 꺼내먹을 차례다.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부록에는 초심자를 위한 인문고전 로드맵이 나와있다. 그중에 1년 차 첫 번째 책이 바로 유득공의 '발해고'였다. 역시나 아무런 생각도 없는 나는 무작정 발해고를 사들고 왔다. 일단 책을 살 때부터 작가님이 추천한 그 책을 그대로 사려고 노력했다. 홍익출판사, 2000년. 그 책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마구 들었다. 나는 무비판적으로 말을 믿고 수용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책을 구매하려 서점에 간 순간부터 내 생각은 누군가에게 지배되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시작은 서해응, 박제가, 유득공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발해고의 집필은 유득공이 고려의 국력이 약한 것은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발굴하지 않고 내버려 둔데 있다고 생각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발해가 요나라에 공격당하여 멸망한 이후, 고려가 발 빠르게 발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발해의 땅이 바로 고구려 땅이었다! 어서 돌려줘라!' 라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분이 없으니 고려의 땅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고려는 끝내 약한 나라가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유득공은 왜 고려가 약한 나라라고 생각했으며, 약한 나라인 왜 하필 발해의 땅을 얻지 못한 것이 그 이유라 생각했을까? 영토의 크기와 국력은 비례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토의 크기와 국력은 비례관계에 있을까?
유득공은 1748년, 영조 24년에 태어난 조선시대 작가이다. 유득공은 규장각에서 일하던 검서관이었다. 그 영향으로 많은 역사서들을 접하게 되었을 테고, 이 경험이 발해고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으로 그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필 왜 발해고였을까? 당시 조선의 세태와 비슷한 면이 있었을까? 유득공의 서문에 보면 '고려가 발해서를 제작하지 못하여 땅을 얻지 못한 것이 크게 한탄스럽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뭔가 있는 듯하다. 결심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역사서를 써야겠다!'라는 막연한 결심 하나로는 절대 발해고를 끝까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서도 발해의 역사는 거의 800년 전의 일이고, 조선 내에서는 아무도 발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고, 발해에 대한 기록들은 정리되지 않고 이곳저곳에 흐트러져 있고, 자료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걸 유득공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점이 그런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며 역사서를 쓰게 한 크나큰 동기가 되었을까?
유득공 에게는 오늘날의 세태를 한탄하며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서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고려가 발해 땅을 얻지 못한 것 때문에 약한 나라였으므로, 우리도 우리 것을 꼭 지키고 발 빠르게 사료를 수집해서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따라서 실패한 역사를 통해 지금의 조국과 앞으로 다가올 조국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아쇠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조국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일 것이다.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사랑'이다. 유득공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뭉쳐진 발해고를 통해서 위대한 업적을 썼다.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다.
발해고는 역사서이다. 9개의 고에 걸쳐 발해의 역사에 대해 기록해놓은 책이다. 역사에 문외한이라 이해하는데 매우 애를 썼다. 온통 한자뿐이고 관직 이름이며 지역 이름들은 금시초문이었다. 당시의 상황과 주변 국가들의 상황을 연결하고 이해하는데도 많은 애를 썼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것까지 나올 정도로 자세히 기록했다고?' 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군고'에서는 각 왕이 몇 년부터 몇 년까지 총 몇 번에 걸쳐 조공하였는지, 얼마큼의 조공을 하였는지 기록되어있는 부분이 있다. 혼자 수집한 자료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세하다.
열심히 읽고 남은 건 발해에 대한 지식보다는, 유득공의 노력과 사랑의 힘에 대한 놀라움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과연 지금 우리 교과서에 발해에 대한 내용은 존재할까.
큰 업적을 이루려면 '사랑'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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